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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게시판

배상호 선교메모 - 기도회를 다시 시작하다

배상호 선교메모(2012년 6월 18일)

 

<기도회를 다시 시작하다>

 

선교사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기도회를 하는 것은 우리 선교부의 처음부터 이어져 온 오랜 전통이었다. 선교사들은 매주 모여 한 주간의 일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며 함께 기도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초창기의 선교부는 선교사들 가정 모두가 한 식구와 똑같았다. 새로운 선교사 가정이 부임하면 공항 픽업에서부터 집 구하는 일, 아이들 입학 수속, 시장보기, 비자 신청, 언어학교 등록 등, 처음부터 모든 정착과정을 자기 일처럼 돌봐주었다. 차가 없는 선교사가 자기 집과 반대방향에 살고 있어도 그를 기도회 장소에 데려오거나 다른 장소에 데려다 주는 일을 조금도 귀찮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모이면 서로의 얼굴 보는 것을 반가워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기도회가 중단되어 버렸다. 이렇게 된 데는 선교사들이 각자 자기 사역에 바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요인은 선교사들 간의 갈등이었다. 단체를 이루다보면 의견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지난 세월 선교부 회의를 하는 가운데 수많은 의견 차이와 대립은 있어왔다. 그러나 회의할 때만 잠시 그랬을 뿐, 회의를 마치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함께 모여 식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두 분 다 이곳을 떠나 계시지 않지만 선교부 회의 때 가장 대립했던 두 최고 고참 선교사님은 회의할 때는 팽팽한 의견대립이 있었지만 회의를 마치면 다시 친구로 돌아가곤 했다. 몇 년 전 그 중 한 분이 중병으로 쓰러져 생명이 위독할 때, 다른 한 분이 그 분을 살려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다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선교부의 모습도 변해갔다. 새로운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분위기도 달라졌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불어난 차량으로 인해 도로가 혼잡하여 선교사들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자연히 기도회 모이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던 차, 몇 년 전에 발생한 선교부 갈등은 그 정도가 깊어 선교부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로 인해 간간히 이어져오던 기도회조차 중단되어 버렸다.

 

그러나 기도회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기도회는 우리 선교부에게 단순한 기도회가 아니었다. 기도 목적 외에도 이 모임을 통해 선교사들은 위로와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서로의 근황을 살피고 자연스럽게 사역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무엇보다 이 기도회는 선교부를 하나로 묶는데 큰 기여를 해왔다. 기도회는 곧 선교부의 힘이었다.

 

나는 이 기도회가 중단된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필리핀 지역대표 책임을 맡은 후, 나는 기도회를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이훈찬 선교사에게 그 책임을 맡겨 시행하도록 했다. 이훈찬 선교사는 매일 두 세 시간을 기도로 보내는 기도의 종이요, 평소 나와 자주 만나 서로 간증을 나누며 깊은 영적 교감을 나누는 관계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 분에게 그 책임을 부탁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이런 저런 이유로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기에 지난 금요일 저녁 첫 기도회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매주 금요일 기도회로 모일 것이다. 당분간은 나와 이훈찬 선교사가 주도하되 설교는 내가 맡고, 기도회는 이훈찬 선교사가 인도하기로 임무 분담을 하였다.

 

1907년 한국교회를 뒤덮은 성령의 불길은 먼저 선교사들의 기도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이 사건을 생각하며 시작한 기도회이기에 나는 기도회를 통해 바라는 것들이 있다. 기도회를 통해 우리 선교사들이 성령의 사람들로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침체된 필리핀 교회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기도회를 끈을 삼아 선교사들의 마음을 예전처럼 하나로 묶어 회복시켜 주시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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